글라골문자와 끼릴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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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4-01 14:22 조회1,752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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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라골문자와 끼릴문자
끼릴과 메포지 및 그 제자들이 활동하던 시기에 슬라브 지역에는 두 개의 문자, 즉 글라골문자(глаголица)와 끼릴문자(кириллица)가 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들 두 문자에 대해서 다음의 두 가지 측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이들 두 문자는 각각 누가 만들었는가?
2) 이들 두 문자 중 어떤 문자가 먼저 창제되었는가?
꼰스딴찐, 즉 끼릴이 어떤 문자를 만들었나 하는 문제는 슬라브 문자가 글라골문자와 끼릴문자의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는 점과 관련된다. 이들 두 문자 중 어떤 문자가 먼저 만들어졌고, 어떤 문자가 그 후에 창제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쓰인 것으로 알려진 고대 문헌들은 이 두 문자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어느 문헌에도 이 두 문자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따라서 이 두 문자가 각각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며, 어떤 문자가 먼저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관점은 서로 다를 수 있으나 끼릴과 메포지의 활동과 연관되어 있는 모라비아-빠노니아와 오흐리드 글라골문자 전통, 많은 글라골 문자로 쓰인 고대 문헌들의 많은 고어성과 11세기 노브고로드 고대 문헌에 근거하여 대부분의 학자들은 끼릴이 글라골문자를 만들었고, 끼릴문자는 9세기 말에 동불가리아의 쁘레슬라프(Преслав)에서 장엄한 비잔틴 문자에 슬라브문자를 근접시키기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Большая советская энциклонедия. Т. 12. 1968). 또한 이러한 관점은 언어학 백과사전에도 끼릴문자는 끼릴과 메포지의 제자와 추종자, 즉 끌리멘뜨 (Климент)에 의해 창제된 것으로 기술된다 (Лингвистический энциклопедический словарь 1990). 똘스또이를 비롯한 현대 슬라브어 학자들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글라골문자가 끼릴문자보다 먼저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그렇다면 왜 끼릴이 만든 문자를 글라골문자라 하고, 끌리멘뜨가 만든 문자를 끼릴문자라고 불리는가 하는 점이다. 이 두 문자 체계의 창제와 관련하여 현재 가장 일반적인 의견은 끼릴이 글라골문자를 만들었고, 그와 메포지의 제자들 중 누군가가 9세기 말 10세기 초에 불가리아에서 끼릴문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Додонов 2008). 이러한 주장에 의하면, 끼릴의 제자들이 그의 종교적 업적과 명성을 기리기 위해 '끼릴'이라는 명칭을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Picchio 1980).
두 개의 슬라브 문자 중 어떤 문자를 끼릴이 만들었는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현대의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글라골문자를 꼰스딴찐, 즉 끼릴의 문자로 인정한다. 그리고 두 번째의 슬라브 문자의 경우 꼰스딴찐이 글라골문자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끼릴문자는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불가리아에서 만들어졌으며, 끌리멘뜨 오흐리드스키(Климент Охридский)를 가장 그럴듯한 창제자로 생각한다.
슬라브문자의 발생은 결과적으로 고대 슬라브어 문어의 탄생을 수반하였으며 슬리브족들 사이에 공통 슬라브적인 자의식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슬리브문자는 민족적 자의식의 발전과 민족 문학의 발전에 대한 자극이 되었다.
끼릴과 메포지 및 그 제자들이 활동하던 시기에 슬라브 지역에는 두 개의 문자, 즉 글라골문자(глаголица)와 끼릴문자(кириллица)가 존재하고 있었다. 따라서 여기에서는 이들 두 문자에 대해서 다음의 두 가지 측면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이들 두 문자는 각각 누가 만들었는가?
2) 이들 두 문자 중 어떤 문자가 먼저 창제되었는가?
꼰스딴찐, 즉 끼릴이 어떤 문자를 만들었나 하는 문제는 슬라브 문자가 글라골문자와 끼릴문자의 두 가지 형태로 존재한다는 점과 관련된다. 이들 두 문자 중 어떤 문자가 먼저 만들어졌고, 어떤 문자가 그 후에 창제되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쓰인 것으로 알려진 고대 문헌들은 이 두 문자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어느 문헌에도 이 두 문자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다. 따라서 이 두 문자가 각각 누구에 의해서 만들어졌으며, 어떤 문자가 먼저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학자들 간에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관점은 서로 다를 수 있으나 끼릴과 메포지의 활동과 연관되어 있는 모라비아-빠노니아와 오흐리드 글라골문자 전통, 많은 글라골 문자로 쓰인 고대 문헌들의 많은 고어성과 11세기 노브고로드 고대 문헌에 근거하여 대부분의 학자들은 끼릴이 글라골문자를 만들었고, 끼릴문자는 9세기 말에 동불가리아의 쁘레슬라프(Преслав)에서 장엄한 비잔틴 문자에 슬라브문자를 근접시키기 위하여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Большая советская энциклонедия. Т. 12. 1968). 또한 이러한 관점은 언어학 백과사전에도 끼릴문자는 끼릴과 메포지의 제자와 추종자, 즉 끌리멘뜨 (Климент)에 의해 창제된 것으로 기술된다 (Лингвистический энциклопедический словарь 1990). 똘스또이를 비롯한 현대 슬라브어 학자들은 이 문제와 관련하여 글라골문자가 끼릴문자보다 먼저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다음과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그렇다면 왜 끼릴이 만든 문자를 글라골문자라 하고, 끌리멘뜨가 만든 문자를 끼릴문자라고 불리는가 하는 점이다. 이 두 문자 체계의 창제와 관련하여 현재 가장 일반적인 의견은 끼릴이 글라골문자를 만들었고, 그와 메포지의 제자들 중 누군가가 9세기 말 10세기 초에 불가리아에서 끼릴문자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Додонов 2008). 이러한 주장에 의하면, 끼릴의 제자들이 그의 종교적 업적과 명성을 기리기 위해 '끼릴'이라는 명칭을 붙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Picchio 1980).
두 개의 슬라브 문자 중 어떤 문자를 끼릴이 만들었는가? 이 문제와 관련하여 현대의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글라골문자를 꼰스딴찐, 즉 끼릴의 문자로 인정한다. 그리고 두 번째의 슬라브 문자의 경우 꼰스딴찐이 글라골문자를 만들었다고 생각하는 거의 대부분의 학자들은 끼릴문자는 9세기 말에서 10세기 초에 불가리아에서 만들어졌으며, 끌리멘뜨 오흐리드스키(Климент Охридский)를 가장 그럴듯한 창제자로 생각한다.
슬라브문자의 발생은 결과적으로 고대 슬라브어 문어의 탄생을 수반하였으며 슬리브족들 사이에 공통 슬라브적인 자의식을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를 계기로 슬리브문자는 민족적 자의식의 발전과 민족 문학의 발전에 대한 자극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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