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뜨르 대제의 문자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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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뜨르 대제의 문자 개혁
출처: 조남신(2014), 러시아어 문자의 규범화 과정: 교회슬라브어의 러시어어화, 동서양 문자의 성립과 규범화.
18세기는 러시아어 발달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러시아어에서 근본적인 경향, 즉 러시아어의 생생한 러시아어 구어와의 근접, 지난 세기 말에 정리된 이중 언어 체계의 와해와 같은 현상이 이후의 언어 발전에 대한 강력한 자극이 된다. 그 결과 국어 문어에 고유한 새로운 특징인 두 언어 형태의 대립에 기반한 이전 상태의 문어 체계의 파괴를 보여주는 일반 대중성과 규범성이 발생한다 (Судавичене и др. 1990).
18세기 초에도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두 가지 언어 – 종교 의식에 사용되는, 권위를 인정받은 교회슬라브어와 18세기 초에 공식적-사회적 분야에서 아직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 러시아어 - 체계가 계속 사용되었다. 18세기의 이러한 언어 상황에서 문헌을 고대 교회슬라브어 전통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노력은 매우 피상적이기는 하지만 1708년에 뾰뜨르 대제에 의한 러시아어 정자법 개정으로 나타난다 (Ефимов 1954). 그 결과 교회슬라브어 전통을 고수하는 교회문자에 대항하여 이른바 ‘시민문자’가 등장하게 된다.
뾰뜨르는 문자 개혁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는 대중들 사이에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전파하기 원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그는 1708~1710년에 시민문자로 알려진 더 간단하고 쉬운 새로운 문자를 도입하였다. 그는 러시아어 알파벳에서 잉여적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제거한 후 그에게 소개된 모든 새로운 문자의 변이형들을 조사하였다. 그는 이전에 숫자적 의미에서만 사용되었던, 더 이상 불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문자 ω(오메가), Ѱ(쁘시), Ѯ(끄시)를 말소하고, 구별적 차이를 나타내는 발음 부호diacritic의 사용을 폐지하였다. 그 외에 Ѫ(유스발쇼이)와 Ѧ(유스말리)는 새로운 문자로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에 Ѳ(피타)와 Ѵ(이지짜)는 사용되지 않았으나 뾰뜨르 대제 사후에 몇몇 복고주의자들의 노력에 의해서 복원되었다. 그러나 이 두 문자는 1917년 문자 개혁 때에 완전히 삭제되었다(Ефимов 1954). 비록 고대 교회슬라브어 알파벳이 러시아 정교회의 공식적인 문자로 남아있지만 뾰뜨르 대제가 실행한 정서법 체계의 변화는 일반적으로 오늘날 비종교적 문자에도 변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러한 정자법 개정을 통하여 그 동안 사용되었던 문자들 중에서 잉여적이라고 인정되는 문자가 폐지되고 16세기부터 러시아어 문자에 э, я가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뾰뜨르 대제에 의하여 э가 철자로 채택되었고, 문자를 통한 숫자 표기법 대신에 아라비아 숫자가 도입되었다 (Boeck, Fleckenstein, Freydank 1974).
18세기에 이르러 러시아에서는 정치, 경제, 문화적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규범화된 문어에 대한 필요성이 커졌다. 또한 이 시대에는 문어의 세속적 문체와 교회 문체의 상관관계가 매우 변화되었다. 이 시기에 교회 문체가 어떻게 평가 받았고 그 비중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1708년에서 1710년 사이에 수행된 뾰뜨르 대제의 문자 개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미 앞에서 기술한 것처럼 이 무렵 끼릴문자는 본질적으로 변화되었고, 문자의 모양은 둥그러지고 단순화되었으며, 강세나 약어 부호와 같은 행간의 부호와 일부 불필요한 문자가 제거되었다 (Ефимов 1954). 이른바 ‘시민문자’라 불리던 서민 문자가 생겨나서 모든 세속 문헌에 이 문자가 쓰이기 시작하고, 끼릴문자는 교회 서적에서만 사용하게 되었으며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되는 숫자 체계도 도입되었다.
1710년 이 후 세속적인 내용의 문헌들은 새로운 철자로 인쇄되었고 이전의 고대 교회슬라브어 전통 위에서 사용되던 문자는 단지 종교 서적에서만 사용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교회슬라브어는 사회 분야에서 사용 영역이 좁아졌다. 반면에 러시아어는 그것과 상호 작용을 통해서 사용 영역을 확장하였으며 유일하고도 잠재적으로 공통적인 국어로서 표준어의 위치를 강화하였다 (Судавичене и др. 1990). 이러한 과정을 거쳐 표준적인 이중 언어가 사라졌고, 단일의 국민적인 러시아어 표준어의 규범이 형성되었다. 그런데 그 규범에는 새로운 문체 체계의 발전, 즉 기능적-문체적 차별화 체계의 발전이 언급되었다. 텍스트 구성과 언어사용의 새로운 규칙들, 언어 자료를 취사선택하는 고유한 방법들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단일의 러시아어 표준어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 러시아어는 국가 교육에서 중요한 원동력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국가적인 자의식의 형성을 촉진하였다.
출처: 조남신(2014), 러시아어 문자의 규범화 과정: 교회슬라브어의 러시어어화, 동서양 문자의 성립과 규범화.
18세기는 러시아어 발달 과정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러시아어에서 근본적인 경향, 즉 러시아어의 생생한 러시아어 구어와의 근접, 지난 세기 말에 정리된 이중 언어 체계의 와해와 같은 현상이 이후의 언어 발전에 대한 강력한 자극이 된다. 그 결과 국어 문어에 고유한 새로운 특징인 두 언어 형태의 대립에 기반한 이전 상태의 문어 체계의 파괴를 보여주는 일반 대중성과 규범성이 발생한다 (Судавичене и др. 1990).
18세기 초에도 의사소통 수단으로서 두 가지 언어 – 종교 의식에 사용되는, 권위를 인정받은 교회슬라브어와 18세기 초에 공식적-사회적 분야에서 아직 권위를 인정받지 못한 러시아어 - 체계가 계속 사용되었다. 18세기의 이러한 언어 상황에서 문헌을 고대 교회슬라브어 전통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노력은 매우 피상적이기는 하지만 1708년에 뾰뜨르 대제에 의한 러시아어 정자법 개정으로 나타난다 (Ефимов 1954). 그 결과 교회슬라브어 전통을 고수하는 교회문자에 대항하여 이른바 ‘시민문자’가 등장하게 된다.
뾰뜨르는 문자 개혁에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는 대중들 사이에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전파하기 원했다. 이러한 목적을 위해 그는 1708~1710년에 시민문자로 알려진 더 간단하고 쉬운 새로운 문자를 도입하였다. 그는 러시아어 알파벳에서 잉여적이라고 생각되는 모든 것을 제거한 후 그에게 소개된 모든 새로운 문자의 변이형들을 조사하였다. 그는 이전에 숫자적 의미에서만 사용되었던, 더 이상 불필요하다고 인정되는 문자 ω(오메가), Ѱ(쁘시), Ѯ(끄시)를 말소하고, 구별적 차이를 나타내는 발음 부호diacritic의 사용을 폐지하였다. 그 외에 Ѫ(유스발쇼이)와 Ѧ(유스말리)는 새로운 문자로 나타나지 않았다. 처음에 Ѳ(피타)와 Ѵ(이지짜)는 사용되지 않았으나 뾰뜨르 대제 사후에 몇몇 복고주의자들의 노력에 의해서 복원되었다. 그러나 이 두 문자는 1917년 문자 개혁 때에 완전히 삭제되었다(Ефимов 1954). 비록 고대 교회슬라브어 알파벳이 러시아 정교회의 공식적인 문자로 남아있지만 뾰뜨르 대제가 실행한 정서법 체계의 변화는 일반적으로 오늘날 비종교적 문자에도 변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러한 정자법 개정을 통하여 그 동안 사용되었던 문자들 중에서 잉여적이라고 인정되는 문자가 폐지되고 16세기부터 러시아어 문자에 э, я가 도입되기 시작하였다. 또한 뾰뜨르 대제에 의하여 э가 철자로 채택되었고, 문자를 통한 숫자 표기법 대신에 아라비아 숫자가 도입되었다 (Boeck, Fleckenstein, Freydank 1974).
18세기에 이르러 러시아에서는 정치, 경제, 문화적 수준이 높아짐에 따라 규범화된 문어에 대한 필요성이 커졌다. 또한 이 시대에는 문어의 세속적 문체와 교회 문체의 상관관계가 매우 변화되었다. 이 시기에 교회 문체가 어떻게 평가 받았고 그 비중이 어떠했는지에 대해서는 1708년에서 1710년 사이에 수행된 뾰뜨르 대제의 문자 개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이미 앞에서 기술한 것처럼 이 무렵 끼릴문자는 본질적으로 변화되었고, 문자의 모양은 둥그러지고 단순화되었으며, 강세나 약어 부호와 같은 행간의 부호와 일부 불필요한 문자가 제거되었다 (Ефимов 1954). 이른바 ‘시민문자’라 불리던 서민 문자가 생겨나서 모든 세속 문헌에 이 문자가 쓰이기 시작하고, 끼릴문자는 교회 서적에서만 사용하게 되었으며 아라비아 숫자로 표기되는 숫자 체계도 도입되었다.
1710년 이 후 세속적인 내용의 문헌들은 새로운 철자로 인쇄되었고 이전의 고대 교회슬라브어 전통 위에서 사용되던 문자는 단지 종교 서적에서만 사용되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교회슬라브어는 사회 분야에서 사용 영역이 좁아졌다. 반면에 러시아어는 그것과 상호 작용을 통해서 사용 영역을 확장하였으며 유일하고도 잠재적으로 공통적인 국어로서 표준어의 위치를 강화하였다 (Судавичене и др. 1990). 이러한 과정을 거쳐 표준적인 이중 언어가 사라졌고, 단일의 국민적인 러시아어 표준어의 규범이 형성되었다. 그런데 그 규범에는 새로운 문체 체계의 발전, 즉 기능적-문체적 차별화 체계의 발전이 언급되었다. 텍스트 구성과 언어사용의 새로운 규칙들, 언어 자료를 취사선택하는 고유한 방법들이 나타났는데, 그것은 단일의 러시아어 표준어의 이념을 실현하는 것으로 평가해야 한다. 러시아어는 국가 교육에서 중요한 원동력의 역할을 수행하였으며 국가적인 자의식의 형성을 촉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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