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어의 문자 발달과 표기 관례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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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7-04-02 21:01 조회1,42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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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의 문자 발달과 표기 관례의 형성
출처: 조남신(2014), 러시아어 문자의 규범화 과정: 교회슬라브어의 러시어어화, 동서양 문자의 성립과 규범화.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슬라브어에서 문자는 9세기 후반에 불가리아로부터 기독교와 함께 고대 교회슬라브어 형태로 도입되었다. 성서를 위해 전적으로 히브리어, 라틴어, 그리스어만을 사용하는 급진적 출발에서 끼릴과 메포지는 슬라브 방언을 가능하게 했던 새로운 알파벳인 글라골문자를 고안하였다. 그 후 수백 년에 걸쳐 기독교가 팽창하면서 이전의 글라골문자를 모방하였으나 그것과는 다른, 새로운 끼릴문자가 불가리아에서 다시 고안되었다. 이 새로운 문자는 빠른 속도로 복잡한 옛 글라골문자를 몰아내고 불가리아 동부를 중심으로 남슬라브 지역에 폭넓게 세력을 확장하였는데, 이 끼릴문자를 바탕으로 한 교회슬라브어(또는 고대 불가리아어)가 988년에 동슬라브 지역으로 도입되어 러시아는 비로소 공식적인 문자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고대 불가리아를 중심으로 전성기를 구가하였던 교회슬라브어는 글라골문자를 바탕으로 한 것과 끼릴문자를 기저로 한, 두 가지 문자 형태로 존재하였다. 그러나 988년 러시아의 키에프 공국에 도입된 언어는 끼릴문자를 바탕으로 한 교회슬라브어였다. 그리스 정교 도입과 더불어 시작된 고대 불가리아어 서적의 러시아에로의 유입은 고대 러시아어 발달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러시아어 문어 전통의 확립에도 고대 불가리아어, 즉 고대 교회슬라브어가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을 제1차 남슬라브어 영향이라고 한다 (김원회 1998). 러시아에서 고대 교회슬라브어, 즉 고대 불가리아어의 이러한 문어적 전통은 18세기 러시아 민족시인 뿌쉬낀의 등장 이전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러시아에서 고대 교회슬라브어는 종교어로서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봉건사회의 국가 이념인 기독교의 언어였다. 교회어로서 고대 교회슬라브어는 민중의 모든 계층에 접근함으로써 민중어와 종교어의 상호 침투 과정의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그 두 언어 사이의 상호 연관 관계는 러시아어 문어 발달사에서 주된 테마가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교회어는 항상 다듬어진 언어 형태를 가지면서 가능한 한 역사의 변화에 대항하는 확고한 규범을 발전시킴으로써 세속적인 민중어와 구별되는 경향을 지닌다. 이러한 과정은 러시아어에서도 나타나게 되는데, 일정한 간격을 두고 민중어적인 요소와 이단적인 탈선으로 볼 수 있는 여타 규범의 불안정성으로부터 교회어를 정화하고자 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Boeck, Fleckenstein, Freydank 1974).
이와 같이 끼예프 공국의 블라지미르 대공에 의해 러시아에 도입되어 사용된 고대 교회슬라브어의 문자 체계의 전개는 계획된 언어 변화와 개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어의 출발부터 현재의 문자 체계까지의 변화 과정은 4가지 중요한 사건들을 인용함으로써 설명될 수 있다. 이것은 862년 슬라브어 문자의 탄생과 제2차 남슬라브어의 영향으로 알려진 일련의 14~16세기 개혁들, 18세기 뾰뜨르 대제의 개혁과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에 일어난 문자 개혁이다.
출처: 조남신(2014), 러시아어 문자의 규범화 과정: 교회슬라브어의 러시어어화, 동서양 문자의 성립과 규범화.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슬라브어에서 문자는 9세기 후반에 불가리아로부터 기독교와 함께 고대 교회슬라브어 형태로 도입되었다. 성서를 위해 전적으로 히브리어, 라틴어, 그리스어만을 사용하는 급진적 출발에서 끼릴과 메포지는 슬라브 방언을 가능하게 했던 새로운 알파벳인 글라골문자를 고안하였다. 그 후 수백 년에 걸쳐 기독교가 팽창하면서 이전의 글라골문자를 모방하였으나 그것과는 다른, 새로운 끼릴문자가 불가리아에서 다시 고안되었다. 이 새로운 문자는 빠른 속도로 복잡한 옛 글라골문자를 몰아내고 불가리아 동부를 중심으로 남슬라브 지역에 폭넓게 세력을 확장하였는데, 이 끼릴문자를 바탕으로 한 교회슬라브어(또는 고대 불가리아어)가 988년에 동슬라브 지역으로 도입되어 러시아는 비로소 공식적인 문자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고대 불가리아를 중심으로 전성기를 구가하였던 교회슬라브어는 글라골문자를 바탕으로 한 것과 끼릴문자를 기저로 한, 두 가지 문자 형태로 존재하였다. 그러나 988년 러시아의 키에프 공국에 도입된 언어는 끼릴문자를 바탕으로 한 교회슬라브어였다. 그리스 정교 도입과 더불어 시작된 고대 불가리아어 서적의 러시아에로의 유입은 고대 러시아어 발달에 매우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결국 러시아어 문어 전통의 확립에도 고대 불가리아어, 즉 고대 교회슬라브어가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이것을 제1차 남슬라브어 영향이라고 한다 (김원회 1998). 러시아에서 고대 교회슬라브어, 즉 고대 불가리아어의 이러한 문어적 전통은 18세기 러시아 민족시인 뿌쉬낀의 등장 이전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게 된다.
러시아에서 고대 교회슬라브어는 종교어로서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봉건사회의 국가 이념인 기독교의 언어였다. 교회어로서 고대 교회슬라브어는 민중의 모든 계층에 접근함으로써 민중어와 종교어의 상호 침투 과정의 토대를 마련하였으며 그 두 언어 사이의 상호 연관 관계는 러시아어 문어 발달사에서 주된 테마가 되었다. 다른 한편으로 교회어는 항상 다듬어진 언어 형태를 가지면서 가능한 한 역사의 변화에 대항하는 확고한 규범을 발전시킴으로써 세속적인 민중어와 구별되는 경향을 지닌다. 이러한 과정은 러시아어에서도 나타나게 되는데, 일정한 간격을 두고 민중어적인 요소와 이단적인 탈선으로 볼 수 있는 여타 규범의 불안정성으로부터 교회어를 정화하고자 하는 과정이 반복되었다 (Boeck, Fleckenstein, Freydank 1974).
이와 같이 끼예프 공국의 블라지미르 대공에 의해 러시아에 도입되어 사용된 고대 교회슬라브어의 문자 체계의 전개는 계획된 언어 변화와 개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문어의 출발부터 현재의 문자 체계까지의 변화 과정은 4가지 중요한 사건들을 인용함으로써 설명될 수 있다. 이것은 862년 슬라브어 문자의 탄생과 제2차 남슬라브어의 영향으로 알려진 일련의 14~16세기 개혁들, 18세기 뾰뜨르 대제의 개혁과 1917년 러시아 혁명 직후에 일어난 문자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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